세어보지 않았던 것들

세어보지 않았던 것들
Photo by Aron Visuals / Unsplash

추석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고향을 찾을 계획을 세우거나, 짧은 여행을 고민하는 분들도 많을 것입니다. 매주 혼란스러운 사회 이슈를 따라가던 웬즈데이터지만, 이번 주만큼은 조금 다른 시선으로 삶을 들여다보려 합니다. 쉬는 날이 기다려지는 이 시기, 숫자로 삶을 되돌아보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보내고 있는 시간

통계청이 발표한 2024년 생명표에 따르면, 한국인 전체의 기대수명은 83.5세입니다. 그리고 30세인 사람이 지금 이 시점에서 앞으로 살아갈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기간은 54.1년입니다. 숫자는 참 크고도 작습니다. 50년이 넘는 시간이 남았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놓이지만, 그 시간을 하나하나 쪼개 보면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집니다.

2024년 생활시간조사에 따르면 우리는 하루 중 11시간 32분을 수면과 식사 등의 필수시간에, 7시간 20분을 일이나 학습, 가사노동 등의 의무시간에, 5시간 8분을 여가시간에 보낸다고 합니다. 이렇게 마주하고 있는 우리의 하루하루를 남은 시간에 대입해보면 어떨까요? 먹고, 자고, 일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우리에게 남은 여가시간은 많아야 12년 정도입니다.

그럼 이 여가시간을 우리는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요? 30대는 하루 평균 3시간 59분의 여가를 가지며, 이 중 절반을 TV, 유튜브, OTT 같은 미디어 시청에 사용합니다. 이와 같은 패턴으로 살아간다면 우리의 소중한 여가시간 중 5년 9개월이 넘는 시간을 화면 앞에서 보내게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

여가시간에 여행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요? 경제적인 여유가 뒷받침된다면, 일반적인 회사원은 1년에 한 번은 해외여행을 떠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건강관리만 잘 해낸다면, 70세까지도 여행을 계속 다닐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계산해보면, 지금 30세라면 앞으로 70세까지 약 40번 정도의 기회가 남아 있습니다.

그럼 일상적인 계절은 어떨까요? 이미 지나간 가을은 30번, 앞으로 맞이할 가을은 대략 50번 정도 남아 있습니다. 그중 몇 번이나 단풍을 보러 가게 될까요? 몇 번은 바빠서, 몇 번은 귀찮아서, 몇 번은 그냥 지나치게 될지도 모릅니다.

정치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통령 선거는 5년에 한 번, 국회의원 선거는 4년에 한 번 열립니다. 기대수명까지 산다고 가정하면 앞으로 대선은 약 10~11번, 총선은 12~13번 남아 있습니다. 물론, 탄핵이 일상인 나라에서는 이보다 더 많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숫자가 많아 보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 정치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투표장까지 가는 횟수는 그 절반에도 못 미칠지 모릅니다.

조금 더 사소하지만 중요한 것도 있습니다. 요즘 같이 빵값이 무섭게 오르는 시대에, 앞으로 소금빵을 몇 번 더 먹을 수 있을까요? 일주일에 1번씩 먹는다고 가정하면 앞으로 약 2,800번 정도는 가능하겠지만, 부디 그 빵값이 그만 올랐으면 좋겠네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남은 시간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모님과의 시간입니다. 60세 전후이신 부모님의 남은 기대수명은 25년 정도입니다. 지금처럼 1년에 두 번, 명절에만 찾아뵌다고 가정한다면 앞으로 부모님을 뵐 수 있는 날은 고작 50번 정도입니다. 이번 추석이 그 한 번이고, 앞으로 남은 50번 중 하나라는 걸 생각해보면, 그 시간이 더 이상 당연하게 느껴지지는 않을지도 모릅니다.

삶은 길어 보이지만, 경험은 유한합니다. 중요한 건 얼마나 오래 사는지가 아니라, 앞으로 몇 번의 기회를 더 가질 수 있을지를 아는 일입니다. 그렇게 숫자를 세어보면, 오늘이라는 시간이 조금 더 또렷해질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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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Tim Urban의 블로그 글 "The Tail End"를 바탕으로, 지금 한국을 사는 청년의 삶에 맞춰 재구성한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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