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는 어떻게 그린란드를 차지했을까?
세계지도를 보면 그린란드 옆 괄호 안에 (덴마크)라고 적혀 있습니다. 그런데 지리적으로는 북미 대륙에 더 가깝고, 역사적으로는 노르웨이 바이킹들이 먼저 정착했던 이 땅이 어쩌다 덴마크의 영토가 되었을까요?
1. 이혼 도장 찍을 때 챙긴 '양육권' (1814년) 사실 그린란드는 아주 오랫동안 노르웨이와 연결된 땅이었습니다. 14세기 말, 노르웨이가 덴마크와 한 나라로 합쳐지면서(동군연합), 그린란드도 자연스럽게 '덴마크-노르웨이 연합왕국'의 관할이 되었죠.
운명은 1814년에 갈렸습니다. 나폴레옹 전쟁에서 패배한 덴마크는 '킬 조약(Treaty of Kiel)'에 따라 노르웨이를 스웨덴에 넘겨줘야 했습니다. 일종의 강제 이혼이었죠. 그런데 이때 덴마크는 교묘한(혹은 챙길 건 챙긴) 협상력을 발휘합니다. "노르웨이 본토는 넘겨주지만, 노르웨이에 딸려 있던 해외 영토(그린란드, 아이슬란드, 페로 제도)는 덴마크가 갖는다." 이 조약 한 줄로 인해 그린란드는 덴마크의 품에 남게 되었습니다.
2. 술자리(?)의 말실수가 가른 운명 (1933년) 시간이 흘러 1931년, 독립국이 된 노르웨이가 뒤늦게 "그린란드 동쪽 땅은 주인이 없는 땅(무주지)"이라며 점유를 선언했습니다. 덴마크는 펄쩍 뛰었고, 두 나라는 이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PCIJ)로 가져갔습니다.
여기서 덴마크가 승소하게 된 결정적인 증거가 나옵니다. 바로 1919년 노르웨이 외무장관 일렌(Ihlen)이 덴마크 대사에게 했던 말 한마디였습니다. "덴마크가 스발바르 제도에 대한 노르웨이의 주권을 인정해 준다면, 노르웨이도 그린란드에 대한 덴마크의 주권을 반대하지 않겠소." 이 구두 약속(일렌 선언)이 법적 효력을 인정받으면서, 재판소는 덴마크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결국 전쟁의 패배 속에서도 영토를 챙긴 외교술, 그리고 경쟁국의 말실수를 놓치지 않은 집요함이 오늘날 덴마크가 '북극의 주인'이 된 배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