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닝 인구 천만의 진실

러닝 인구 천만의 진실
Photo by Mārtiņš Zemlickis / Unsplash

지난 한 해,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달리기'에 빠져 있었습니다. 한강 공원과 도심은 형형색색의 러닝 크루들로 가득 찼고, SNS는 주말마다 마라톤 대회 인증샷으로 도배되었죠. 스포츠 브랜드들은 앞다퉈 수십만 원대 카본 러닝화의 품절 대란을 훈장처럼 홍보했습니다.

비록 겨울 추위에 그 열기가 잠시 숨을 고르고 있지만, 미디어와 기업들은 여전히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합니다. "대한민국은 지금 러닝 붐", "바야흐로 러닝 인구 1,000만 시대"라고 말이죠.

천만 명. 우리 국민 5명 중 1명은 러너라는 이야기입니다. 지하철 한 칸에 탄 승객 중 10명은 러너여야 성립되는 이 거대한 숫자는 과연 사실일까요? 우리는 때로 화려한 분위기에 휩쓸려 숫자의 실체를 제대로 보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정부의 공식 통계 데이터를 통해 이 '천만'이라는 숫자의 진실과, 그 뒤에 숨겨진 사회적 욕망을 깊이 들여다보았습니다.


차가운 데이터가 말하는 현실

문화체육관광부는 매년 우리 국민들의 운동 참여 현황을 조사해 발표합니다. 지난 19일 발표된 <2025년 국민생활체육조사> 결과는 우리가 믿고 있던 '천만 러너'의 신화와는 꽤 큰 거리가 있습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만 10세 이상 국민 4,800만 명 중 최근 1년간 한 번이라도 체육활동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사람의 비율을 조사했습니다. 여기서 '달리기(조깅, 마라톤 포함)'의 경험률은 단 7.5%에 불과했습니다.

출처: 문화체육관광부

이 비율을 인구수로 환산해 보면 그 격차는 더욱 명확해집니다. 2025년 기준 만 10세 이상 인구 약 4,870만 명에 7.5%를 적용하면, 실제 달리기 경험 인구는 약 365만 명 수준입니다. 언론과 마케팅이 외치는 1,000만 명의 절반에도, 아니 3분의 1 수준에 겨우 미치는 수치입니다.

더 흥미로운 것은 '규칙적으로 운동하는 사람들'의 선택입니다. 일주일에 1회 이상 꾸준히 운동하는 사람들이 '주로 참여하는 종목'을 꼽았을 때, 1위는 여전히 '걷기(40.5%)'가 압도적이었습니다. 반면 달리기를 주된 운동으로 꼽은 비율은 7.7%에 그쳤습니다.

데이터는 명확한 팩트를 보여줍니다. 화려한 러닝복을 입고 도심을 가로지르는 모습이 우리의 시선을 강렬하게 빼앗았을 뿐, 대다수의 국민들은 묵묵히, 그리고 조용히 걷거나 자신만의 운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이토록 과장된 숫자를 의심 없이 받아들였을까요?


소수가 다수처럼 보이는 마법

데이터와 현실 인식 사이의 거대한 괴리는 '과잉 가시성(Hyper-visibility)'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러닝은 태생적으로 '보여지는 운동'입니다. 헬스장이나 집에서 하는 운동과 달리, 러너들은 도심 한복판을 가로지르고 무리를 짓습니다. 그들의 에너지는 도시의 풍경을 지배합니다. 여기에 SNS 알고리즘이 만드는 '필터 버블(Filter Bubble)'이 더해지면 착시는 확신이 됩니다.

여러분이 무심코 러닝화 사진을 한 번 클릭하거나 인증샷에 '좋아요'를 누르는 순간, 알고리즘은 피드를 온통 '달리는 사람'으로 채워버립니다. 반면, 전체 운동 인구의 40%를 차지하는 '걷기 인구'는 굳이 SNS에 인증샷을 올리지 않죠.

결국 "시끄러운 소수"가 "조용한 다수"를 압도하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실제로는 7.5%만이 달리고 있지만, 스마트폰 화면 속에서는 세상의 절반이 러너인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죠. '천만 러너'라는 숫자는 실제 인구수가 아니라, 그들이 뿜어내는 '온라인상의 존재감'을 반영한 숫자일지도 모릅니다.


불안을 파고드는 숫자 마케팅

이 과장된 숫자를 가장 반기는 것은 시장입니다. 기업들은 '천만'이라는 거대한 숫자를 이용해 개인의 불안 심리를 정교하게 파고듭니다.

먼저 '동조 압력'입니다. "천만이 선택했다", "지금 가장 핫하다"는 메시지는 우리에게 나만 유행에서 소외된 것 같은 FOMO(소외 불안)를 심어줍니다. 내가 달리는 목적과는 상관없이, 부풀려진 숫자가 주는 압박감에 떠밀려 소비 대열에 합류하게 되는 것이죠.

또한 '장비로 급 나누기'가 심화되었습니다. "진정한 러너라면 카본화는 필수"라며 장비가 곧 실력이라는 인식을 심어줍니다. 이는 신발을 사면 그에 맞는 옷과 시계까지 전부 새것으로 바꾸게 되는 '디드로 효과(Diderot Effect)'로 이어져, 순수한 운동을 거대한 '아이템 획득 게임'으로 변질시킵니다.

결국 '천만 러닝 인구'는 시장의 파이를 키우고 고가 제품의 소비를 정당화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활용된 '마케팅적 허수'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숫자의 소음 끄고, 나만의 리듬으로

'2025년 국민생활체육조사'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단순하지만 묵직합니다. "세상은 생각보다 유행에 민감하지 않으며, 각자의 방식대로 조용히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누군가는 새벽 공기를 가르며 달리고, 누군가는 퇴근길 버스 한 정거장 전에 내려 걷습니다. 그 비율이 7%든 40%든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숫자가 '나에게 맞는 방식인가'입니다.

세상이 말하는 '대세'라는 숫자에 압도될 필요가 없습니다. 그 숫자는 종종 과장되어 있고, 특정 의도에 의해 부풀려져 있으며, 무엇보다 당신의 삶을 대변해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데이터 리터러시(Data Literacy)는 복잡한 통계 공식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모두가 그렇다"라고 외치는 세상의 소음 속에서, "정말 그럴까?"라고 멈춰 서서 질문할 수 있는 용기입니다. 화려한 '천만'이라는 숫자 뒤에 가려진, 묵묵히 자신의 호흡대로 움직이는 '한 명'의 나를 발견하는 것이 진짜 통찰의 시작입니다.


우리는 묻습니다

  • 당신은 최근 "남들 다 한다"는 말이나 숫자에 이끌려 내키지 않는 소비나 행동을 한 적이 있나요?
  • 러닝이나 특정 취미 활동을 하면서, 순수한 즐거움보다 '장비'나 '보여주기'에 더 신경 썼던 순간은 없었나요?
  • 세상의 유행과 상관없이, 당신이 꾸준히 지켜오고 있는 당신만의 '마이너'하지만 소중한 습관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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