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구역을 합치면 소멸을 막을 수 있을까?
요즘 뉴스를 보다 보면 전국 지자체들의 최대 화두가 단연 '행정구역 통합'이라는 것을 쉽게 느낄 수 있습니다. 김포를 서울에 편입하자는 논의부터 대구와 경북, 충청권, 그리고 부울경에 이르기까지, 전국 곳곳에서 지도 위의 선을 지우고 덩치를 키우려는 메가시티 프로젝트가 한창입니다.
인구와 자본이 걷잡을 수 없이 수도권으로 쏠리는 현실 속에서, 지방 도시들이 꺼내든 절박한 생존 전략인 셈입니다. 하지만 바람이 빠지고 있는 튜브 두 개를 붙인다고 해서, 그것이 거친 파도를 견뎌낼 튼튼한 구명보트가 될 수 있을까요?
소멸의 진짜 이유는 '면적'이 아닙니다
지자체들이 이토록 통합을 외치는 가장 큰 이유는 이른바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기 위해서입니다. 인구 100만 명의 도시 두 개가 합쳐져 200만 명의 거대 도시가 되면, 중복으로 낭비되던 행정 비용을 줄일 수 있을 거란 계산이죠. 나아가 훌쩍 커진 시장 규모를 내세우면 대기업을 유치하기도 훨씬 수월해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깔려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마주한 지방소멸의 위기는 단순히 행정망의 규모가 작거나 땅이 좁아서 생긴 문제가 아닙니다. 청년들이 고향을 떠나는 이유는 내 지역의 인구수가 50만 명에 불과해서가 아니라, 당장 '내 커리어를 키울 만한 번듯한 직장'과 '주말을 다채롭게 채워줄 문화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행정구역을 하나로 합쳐 서류상의 시장 규모를 그럴듯하게 키운다고 해서, 없던 대기업이 생기거나 대형 병원과 복합 쇼핑몰이 저절로 지어지지는 않습니다.
숫자가 증명하는 구조적 한계
통계 지표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우리가 직면한 문제의 본질이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한국고용정보원의 발표에 따르면, 20~39세 여성 인구가 65세 이상 고령 인구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소멸위험지역'은 전국 228개 시·군·구 중 130곳으로 무려 57.0%에 달합니다. 심지어 인구 300만의 거대 도시 부산마저 광역시 최초로 소멸위험단계에 진입했습니다. 덩치가 크다고 해서 소멸의 파도를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무엇보다 뼈아픈 대목은 이동하는 인구의 연령대입니다. 비수도권에서 수도권으로 짐을 싸서 떠나는 순이동 인구의 절대다수가 바로 2030 세대입니다. 지방의 청년 인구는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고령 인구만 빠르게 늘어나는 이 구조적인 늪 속에서, 단순히 두 지자체를 합친다고 한들 소멸 위험 지수 자체가 극적으로 반전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위기를 겪고 있는 지역 두 곳의 인구를 더해본들, 그저 '조금 더 덩치가 큰 위기 지역'이 탄생할 뿐입니다.
헤이세이 대합병이 남긴 뼈아픈 타산지석
단순한 외형 확장이 가져올 수 있는 부작용은 우리보다 앞서 인구 감소를 겪은 이웃 나라 일본의 사례에서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일본은 1999년부터 2010년까지 '헤이세이 대합병'이라는 이름 아래 대규모 행정구역 통합을 단행했습니다. 그 결과 무려 3,200여 개에 달하던 기초지자체가 절반 수준인 1,700여 개로 대폭 통폐합되었습니다.

당초 목표는 행정의 효율화를 이끌어내고 지방의 자립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었지만, 현실의 결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두 개의 도시가 하나로 합쳐지자 자본과 인프라는 자연스럽게 새로운 거대 도시의 '중심부'로만 쏠렸고, 통합된 주변부 지역에서는 시청과 같은 핵심 행정기관마저 철수해 버렸습니다.
작은 동네에서 가장 큰 일자리이자 든든한 소비 주체였던 공공기관이 사라지자 주변 상권은 도미노처럼 무너져 내렸고, 결국 일자리를 잃은 외곽 지역의 청년들은 대도시를 향해 더 빠르게 떠나버리는 역효과를 낳았습니다.
2030이 진정 원하는 것은 '새로운 간판'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내가 매일 살아가는 곳의 주소지가 '광역시'인지 '메가시티'인지가 아닙니다. 2030 직장인들이 삶의 터전을 선택하는 기준은 훨씬 더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곳에 맞닿아 있습니다.
고단한 퇴근 후 영감을 채울 수 있는 문화 공간이 곁에 있는지, 지옥 같은 출퇴근을 버텨낼 만한 촘촘한 대중교통망이 갖춰져 있는지, 그리고 내 아이가 한밤중에 아플 때 당장 안고 달려갈 수 있는 소아과가 동네에 있는지가 삶의 질을 결정하는 핵심입니다.
두 개의 지자체를 하나로 합치는 과정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시간과 막대한 매몰 비용이 발생합니다. 만약 지도를 다시 그리고 도로 표지판을 바꿔 다는 데 쓰일 그 천문학적인 비용을, 지역 내 핵심 거점에 필수 인프라를 '고밀도'로 채워 넣는 데 집중한다면 어떨까요? 2030 세대가 간절히 필요로 하는 것은 억지로 넓혀놓은 휑한 영토가 아니라, 일상이 쾌적하고 단단하게 굴러가는 '밀도 높은 인프라'입니다.
우리는 묻습니다
- 덩치를 키우는 거창한 프로젝트에 막대한 행정력과 예산을 쏟아붓느라, 정작 청년들이 떠나는 진짜 이유를 해결할 정책들은 뒷전으로 밀려난 것은 아닐까요?
- 메가시티라는 화려한 이름표 뒤에서 행정 거점마저 잃고 더 빠르게 쇠퇴의 길을 걷게 될 외곽 지역의 일상은 과연 누가 책임져야 할까요?
통계표에 찍히는 인구 숫자는 단숨에 커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훌쩍 커진 숫자 안에 우리의 나아진 일상이 깃들어 있지 않다면, 그 거대한 도시는 과연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공간일지 되물어봐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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