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아 선호 1위 대한민국
"아들 하나는 있어야 든든하지." 불과 30년 전, 이 말은 한국 사회의 불문율이었습니다. 하지만 2026년의 대한민국은 완전히 다른 성적표를 받아 들었습니다.
최근 갤럽의 글로벌 조사 결과는 충격적입니다. 전 세계 44개국 중 '딸을 가장 선호하는 나라' 1위, 바로 한국(28%)입니다. 1990년 여아 100명당 남아 116.5명이 태어나며 '남아 선호'가 정점을 찍었던 나라에서, 어떻게 단 한 세대 만에 이런 반전이 일어난 걸까요?

이 극적인 변화는 단순한 취향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 이면에는 '자녀의 효용 가치'가 근본적으로 달라진 한국 사회의 생존 본능이 숨어 있습니다.
'보험'의 만기, 아들 신화의 붕괴
과거 농경 사회와 산업화 초기, 아들은 가문을 잇는 존재이자 부모의 노후를 책임지는 확실한 '연금 보험'이었습니다. 아들에게 투자하는 것은 곧 나의 미래를 위한 저축과 같았죠.
하지만 고성장 시대가 끝나고 저출산·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이 공식은 처참하게 깨졌습니다.
- 고비용 저효율 구조: 아들은 결혼 시 주택 마련 등 막대한 '비용'이 들지만, 결혼 후에는 원가족보다 자신의 가정에 집중하며 심리적 거리가 멀어지는 경향이 뚜렷해졌습니다.
- 부양의 주체 변화: 부모 부양의 책임이 가족에서 국가(연금, 복지)와 개인(각자도생)으로 넘어가면서, 아들을 통해 경제적 안정을 얻으려는 기대심리는 사라졌습니다.
경제적 효용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은 '양육의 난이도'입니다. 경쟁이 치열한 한국 사회에서 아들은 상대적으로 키우기 힘들고 투입 비용은 높은 반면, 정서적 보상은 낮다는 인식이 '아들 리스크'로 자리 잡았습니다.
고립의 시대, 딸이라는 '정서적 자산'
아들이라는 '기능적 자산'의 가치가 하락하자, 그 자리를 '정서적 자산'인 딸이 채웠습니다.
초개인화된 사회에서 현대인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고립'입니다. 특히 수명이 길어진 부모 세대에게 필요한 것은 경제적 지원보다 '지속적인 소통과 교감'입니다.
- 감정의 연결고리: 딸은 성장 과정에서 부모와 정서적 유대감을 깊게 형성하고, 성인이 되어서도 원가족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 돌봄의 파트너: 맞벌이 부부가 일반화되면서, 손주 육아나 노부모 간병 등 돌봄 노동의 현장에서 딸은 며느리보다 편안하고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로 인식됩니다.
결국 세계 1위의 여아 선호 현상은 "외로운 노후에 나를 찾아와 줄 사람은 딸밖에 없다"는 부모 세대의 불안과 생존 전략이 투영된 결과입니다.
딸을 원하는 나라들의 공통점
데이터를 보면 흥미로운 패턴이 발견됩니다. 여아 선호도가 높은 국가들(한국 28%, 일본 26%, 스페인 26%)은 뚜렷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 급격한 고령화: 노후에 대한 불안감이 높은 사회입니다.
- 가족 중심주의의 잔재: 서구권에 비해 가족 간의 유대와 돌봄을 여전히 중요하게 여깁니다.
- 과도기적 성 역할: 여전히 가사나 감정 노동, 돌봄의 주체로 여성을 기대하는 문화가 남아 있습니다.
반면, 북유럽 국가나 성 평등 지수가 매우 높은 나라들은 '성별 상관없음' 응답이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이는 한국의 여아 선호가 완전한 성 평등의 결과라기보다, 전통적인 성 역할(돌봄과 정서적 노동)을 수행해 줄 존재로서 여전히 여성을 필요로 하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우리는 묻습니다
과거 우리가 노동력을 위해 아들을 원했다면, 지금 우리는 정서적 위안을 위해 딸을 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 '착한 딸 콤플렉스'의 대물림: "딸이 효녀다", "딸이 살갑다"는 기대가, 딸들에게 또 다른 형태의 '감정 노동'을 강요하는 것은 아닐까요?
- 진정한 선호인가, 회피인가: 아들 선호의 감소는 성 평등의 실현일까요, 아니면 고비용 양육 구조에서의 '합리적 회피'일까요?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특정 성별의 자녀가 아니라, 그저 '나와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따뜻한 사람'이라면, 그 부담을 오롯이 딸에게만 지우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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