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에도 가지치기가 필요하다
3월입니다. 새 학기, 새 부서, 새로운 모임. 봄의 시작은 늘 낯선 인사와 새로운 만남으로 북적입니다.
하지만 새로 저장되는 연락처가 늘어날수록, 휴대전화 주소록 아래로 조용히 밀려나는 이름들도 생겨납니다. 한때는 매일 일상을 나누었지만 이제는 명절에나 겨우 안부를 묻고, 결국 그마저도 뜸해진 인연들. 우리는 종종 조용히 멀어진 관계를 떠올리며 미안함이나 씁쓸함을 느낍니다. '내가 너무 무심했나', '사는 게 바빠서 사람을 잃는구나'라며 자책하기도 하죠.
그러다 문득 이런 질문을 하게 됩니다. 누군가와 멀어지는 건, 정말 우리의 노력이 부족하거나 마음이 변해서일까요?
마음이 식은 게 아니라, 예산이 바닥난 것
우리는 관계가 단절되는 것을 흔히 '감정'의 문제로 치환하지만, 진화인류학과 심리학의 데이터는 이를 철저히 '구조'의 문제로 설명합니다.
영국의 인류학자 로빈 던바(Robin Dunbar)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뇌가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사회적 관계의 최대치는 약 150명입니다. 그중에서도 슬픔을 나누고 깊이 의지할 수 있는 핵심 그룹은 단 5명, 주기적으로 연락하는 친한 친구는 15명 남짓에 불과하죠.

여기에 캔자스대 제프리 홀(Jeffrey Hall) 교수의 연구를 더해볼까요? 그의 분석에 따르면 타인과 '가벼운 친구'가 되려면 약 50시간, '아주 친한 친구'가 되려면 무려 200시간 이상을 질적으로 함께 보내야 합니다.
새로운 관계를 무한정 늘릴 수도, 기존의 관계를 모두 안고 갈 수도 없는 이유는 정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물리적인 '시간 예산'과 뇌의 '인지 용량'이 이미 한계에 도달했기 때문입니다.
한정된 용량, 억지스러운 연대를 거부하다
내게 허락된 관계의 총량이 이토록 제한적이라면, 우리는 이 귀한 용량을 어떻게 써야 할까요? 최근의 사회적 변화는 우리가 이 질문에 대한 새로운 답을 찾아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과거에는 이 한정된 예산을 무리하게 쪼개어 넓고 얕은 관계를 유지하려 애썼습니다. 그 과정에서 관계의 거리를 좁히는 가장 효율적인 '치트키'가 바로 알코올이었죠. 하지만 실제 주류 출고량 데이터를 들여다보면 과거와는 흐름이 달라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2010년대 중반 정점을 찍었던 주류 출고량은 이후 완만한 감소세로 돌아섰고, 팬데믹 이후 일상이 완전히 회복되었음에도 예전과 같은 소비량은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사람들이 건강을 챙기기 시작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한정된 관계 용량을 억지스러운 의무감이나 수직적인 연대에 더 이상 낭비하지 않겠다는 구조적 변화의 신호입니다. 억지로 취기를 빌려 소속감을 확인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관계의 밀도를 스스로 조절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취하기보다 취향을 선택하는, 마음의 가지치기
술이 빠져나간 자리는 러닝 크루, 북클럽, 원데이 클래스 등 '취향'을 공유하는 느슨한 연대가 채우고 있습니다. 직급을 묻는 대신, 함께 땀을 흘리거나 같은 문장을 읽고 생각을 나눕니다. 나의 귀한 '200시간'을, 온전히 같은 온도와 취향을 나누는 사람들에게 쓰겠다는 선언입니다.
그렇기에 기존의 누군가와 거리가 멀어지는 것을 실패라 부를 수 없습니다. 나무가 더 크고 단단하게 자라기 위해서는 묵은 잔가지를 쳐내는 과정이 필수적입니다.
우리가 맺는 인연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의 뇌와 시간이 밀도 높은 새로운 경험을 받아들이고, 내게 진짜 소중한 '코어 그룹'에게 더 집중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마음의 가지치기'를 하는 과정일 뿐입니다.
그러니 자책감은 덜어내도 좋습니다. 조용히 멀어진 인연은 그 시절, 그 공간에서 서로에게 충분히 의미 있는 역할을 다하고 아름답게 떨어져 나간 잎사귀일 뿐이니까요.
우리는 묻습니다
- 연락처에 쌓인 수많은 이름 중, 당신의 귀한 '200시간'을 기꺼이 내어주고 싶은 사람은 누구인가요?
- 멀어진 인연에 대한 씁쓸함 대신, 한정된 내 마음의 용량을 비집고 여전히 곁에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안부를 건네보는 것은 어떨까요?
인연의 계절, 당신의 건강한 마음의 가지치기를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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