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장은 정말 바보의 선택일까
돈과 관련된 뉴스는 민감하게 반응을 일으킵니다. 그중에서도 세금은 논쟁을 피할 수 없는 주제입니다.
지난주 발표된 세제개편안 역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종목당 50억원 이상을 보유한 주식을 가진 사람에게만 부과되던 양도소득세 과세 기준을, 다시 10억원 이상으로 낮추겠다는 정부의 발표에 투자자들은 크게 반발했습니다. "어느 바보가 국장에 투자하겠냐"는 말이 담긴 기사가 연일 헤드라인을 장식했고, 국민청원에는 나흘 만에 13만 명 이상이 동의했습니다.
대주주 기준 강화는 왜 이토록 뜨거운 반응을 낳는 걸까요?
대주주 과세는 왜 시작됐고, 한국만 뭐가 다른가
상장주식의 양도차익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는 제도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존재합니다. 미국, 일본, 독일, 영국 모두 투자금액과 무관하게 양도차익에 과세하고 있습니다. 다만 장기 보유자에게는 세율을 낮춰주거나, 소액 투자자에게는 일정 금액까지 비과세 혜택을 주는 방식으로 형평성을 보완합니다.

반면 한국은 오랫동안 비과세를 원칙으로 삼아왔고, 특정 조건을 충족한 '대주주'에게만 과세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운영해 왔습니다. 이는 산업화 초기, 금융산업의 발전과 주식시장의 육성을 위해 소액투자자에게 세 부담을 지우지 않으려는 정책적 판단에서 비롯된 것이었고, 이후 제도 변화 없이 지금까지 이어져 온 구조입니다. 당시에는 투자 기반을 넓히는 것이 우선 과제였기 때문에, 과세를 제한하는 방식이 부득이한 선택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이로 인해 실제 과세 대상은 전체 투자자의 1%에도 못 미쳤고, 종목당 보유 금액 기준이라는 구조는 예측 가능성을 떨어뜨렸습니다.
이러한 예외적 구조는 해외 투자자들로부터 ‘제도 투명성 부족’ 혹은 ‘불균형한 과세 체계’라는 지적을 받아왔습니다. 실제로 한국은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이 발표하는 국가별 시장 분류에서 아직까지 선진국 지위에 포함되지 못하고 있으며, 조세 제도와 외국인 투자환경 등 구조적 제약들이 주요한 걸림돌로 지적되어 왔습니다. 한때는 금융투자소득세를 통해 모든 투자자에게 동일한 과세 원칙을 적용하려 했지만, 2년 유예 끝에 2024년 12월에 공식 폐기되면서 다시 기존 체계로 회귀하게 됩니다.
한국의 대주주 과세 체계는 과세 자체보다, 예외와 특례의 방식으로 설계돼 있다는 점에서 국제 기준과 차이를 보입니다.
과세 기준은 어떻게 바뀌어왔을까
대주주 양도세 과세 기준은 정권에 따라 자주 변경되어 왔습니다. 이 변화는 단순한 숫자 조정이 아니라, 투자자 신뢰와 정책 일관성 측면에서 중요한 시사점을 담고 있습니다.

- 김대중 정부: 대주주 양도차익 과세 제도 도입 (지분율 3% 또는 종목당 100억원 이상 보유)
- 박근혜 정부: 100억원 → 50억원 → 25억원으로 단계적 강화
- 문재인 정부: 25억원 → 15억원 → 10억원까지 추가 하향 조정, 금융투자소득세 도입을 위한 연착륙 전략 추진
- 윤석열 정부: 금융투자소득세 도입 유예와 함께 대주주 기준을 50억원으로 대폭 상향, 회피 매도 방지를 명분으로 삼음
- 이재명 정부: 다시 10억원으로 환원, 기존 완화 조치에 제동을 거는 방향으로 전환
문재인 정부는 금융소득 과세 형평성을 높이기 위해 모든 투자자를 포괄하는 금융투자소득세 체계를 추진하며, 대주주 요건을 단계적으로 하향해 세부담 확대에 시장이 적응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일종의 정책적 연착륙이었습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금융투자소득세 자체를 유예하고, 오히려 대주주 기준을 50억원으로 상향하면서 정책 방향을 정반대로 틀었습니다. 이로 인해 과세 기반은 오히려 축소됐고, 제도의 일관성은 흔들렸습니다.
이번 이재명 정부의 환원 조치는 제도의 방향성을 다시 국제적 기준에 맞추려는 시도라 볼 수 있습니다. 다만 투자자 입장에서는, 금융투자소득세 폐지에는 합의했던 정부가 왜 다시 대주주 요건을 건드리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수 있습니다. 과세 체계가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를 납득하기 어렵다면, 정책 결정의 일관성과 신뢰 역시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세금 제도의 숫자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어디를 향해 움직이는지를 예측할 수 있느냐는 점입니다.
회피 매도는 실제로 존재했을까
이번 청원과 언론 보도에서는 대주주 기준 상향의 명분으로 '연말 회피 매도'를 반복적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윤석열 정부에서도 2023년 실제로 기준을 상향하면서, 연말마다 대주주 기준 회피를 위한 매도 물량이 쏟아져 시장이 왜곡된다는 점을 주요 근거로 내세웠습니다. 실제로 일부 투자자들이 보유 주식을 기준선 이하로 낮추기 위해 연말에 주식을 처분하는 사례가 존재해 왔습니다.

그러나 전체 시장 차원에서 이를 얼마나 '충격'으로 볼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2020년 말과 2021년 말, 대주주 기준이 각각 10억원이던 시기에도 코스피는 상승세를 유지했습니다. 거래량이 일시적으로 증가한 흔적은 있으나, 지수에 결정적인 하락 압력을 가한 흔적은 뚜렷하지 않습니다.
특히 2020년은 코로나19 이후 동학개미운동으로 개인 투자자 유입이 급증했던 시기였고, 오히려 시장의 전체 유동성은 강하게 유지되었습니다. 당시 기획재정부도 보도자료를 통해 “대주주 기준과 주가 간에는 통계적으로 명확한 상관관계가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회피 매도라는 일시적 현상이 제도의 예측 가능성과 형평성을 해칠 정도로 심각했는지를 따져보는 일입니다. 세금 제도는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이 우선되어야 하며, 일시적 거래 왜곡이 이 기준 변화의 결정적 명분이 되기에는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과세 기준이 주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는 주장은, 제한적 사례와 통계를 전체 제도의 근거로 삼기에는 부족합니다.
우리는 묻습니다
- 세금은 ‘누가 얼마나 부담할 것인가’를 정하는 일입니다. 그 기준은 어떤 원칙 위에서 설계되어야 할까요?
정책은 때로 정무적 판단에 따라 바뀔 수 있지만, 조세 제도는 장기적인 방향성과 일관성을 전제로 설계되어야 합니다. 세입 확대든 형평성이든 목표가 무엇이든, 그 기준은 납득 가능해야 하며, 투자자에게 예측 가능성을 제공해야 합니다.
지금 필요한 건 정책의 유연성이 아니라, 제도의 일관성입니다. 목적지가 분명하다면, 잠시 돌아가더라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방향이 계속 바뀐다면, 시장은 신뢰를 잃고 인내심을 갖기 어렵습니다.
방향이 자꾸 바뀌는 네비게이션을 신뢰할 운전자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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