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영화관의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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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영화관의 법칙
Photo by Erwan Hesry / Unsplash

메리 크리스마스! 1년 중 가장 설레는 아침이 밝았습니다. 거리에는 캐럴이 울리고, 많은 이들이 소중한 사람과 함께할 저녁을 계획하고 계시겠죠. 그 계획의 끝자락에 '영화관'을 염두에 두고 계신 분들도 많을 겁니다.

우리는 흔히 크리스마스 영화라고 하면 <러브 액츄얼리><로맨틱 홀리데이> 같은 달콤한 로맨스를 떠올립니다. 하얀 눈이 내리는 배경 속에서 사랑이 이루어지는 이야기야말로 이 시즌의 정석처럼 느껴지니까요.

하지만 데이터가 보여주는 크리스마스의 풍경은 우리의 상상과는 사뭇 다릅니다. 오늘 웬즈데이터는 팝콘 냄새 가득한 극장가 데이터를 통해, 우리가 크리스마스에 실제로 어떤 선택을 해왔는지 살펴보려 합니다.


1년 중 가장 뾰족한 그래프, 아웃라이어

데이터의 관점에서 12월 25일은 1년 중 가장 독특한 날 중 하나입니다. 통계적으로 이날의 관객 수는 평균적인 분포를 크게 벗어나는 '아웃라이어(Outlier, 이상치)'에 해당합니다.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의 2024년 집계 자료를 살펴보면 이 현상은 더욱 명확해집니다. 지난해 크리스마스 당일 관객 수는 약 155만 명으로, 1년 365일 중 압도적인 1위를 기록했습니다. 이는 천만 영화들이 스크린을 휩쓸던 여타 성수기 주말(2위 약 129만 명)보다도 훨씬 높은 수치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급증 현상이 날씨나 요일 변수와 관계없이 매년 반복되는 상수라는 점입니다. 갈 곳이 제한적인 겨울, 그리고 '특별한 날에는 외출을 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영화관이라는 가장 보편적인 여가 공간으로 수요를 집중시킨 결과입니다.

결국 크리스마스의 영화관은 단순한 인기를 넘어, 우리 사회의 여가 패턴이 만들어낸 거대한 응집 현상의 결과물인 셈입니다.


로맨스는 없다, 안전한 선택만 있을 뿐

"크리스마스에는 멜로 영화"라는 공식은 데이터 앞에서는 힘을 잃습니다. 역대 크리스마스 박스오피스 상위권을 차지한 영화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로맨스보다는 '액션 블록버스터'나 '대형 한국 영화'가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합니다.

최근 10년간의 데이터를 복기해보면 <신과 함께>, <아바타>, <히말라야> 등 스케일이 크거나 가족 단위 관람이 가능한 '텐트폴(Tentpole) 영화'들이 차트를 점령했습니다. 이는 크리스마스 관람객의 구성원과 관련이 깊습니다.

연인뿐만 아니라 친구, 가족 등 다인원 그룹이 극장을 찾기 때문에, 개인의 취향을 타는 장르보다는 모두가 무난하게 즐길 수 있는 '실패 없는 선택'을 선호하게 됩니다. 배급사들 또한 이 시기에 맞춰 가장 대중적인 대작을 배치합니다. 결국 크리스마스의 스크린은 낭만적인 분위기보다는, 가장 확실한 오락성을 좇는 대중의 심리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커플 사이의 숨은 승자, 애니메이션

블록버스터의 틈바구니 속에서, 데이터상으로 유의미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장르는 의외로 '애니메이션'입니다.

통상적으로 크리스마스를 연인들의 날로 인식하지만, 시간대별 예매 데이터를 분석해보면 오전과 낮 시간을 주도하는 것은 어린 자녀를 동반한 가족 단위 관객입니다. 이 시기 개봉하는 주요 애니메이션들의 좌석 판매율은 대작 영화 못지않은 높은 수치를 기록하곤 합니다.

출처: CJ ENM

이는 크리스마스가 소비되는 방식이 세대별로 다층적임을 시사합니다. 저녁 시간이 연인과 성인들의 시간이라면, 낮 시간은 아이들을 위한 이벤트의 시간으로 채워집니다. 화려한 네온사인과 커플들의 모습 뒤에는, 아이 손을 잡고 극장을 찾은 수많은 가족의 발걸음이 통계의 한 축을 단단히 지탱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묻습니다

올해 크리스마스 영화관의 간판을 보셨나요? 전 세계적인 흥행 대작의 후속편인 <아바타: 불과 재>와 온 가족이 기다려온 <주토피아 2>가 스크린을 양분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확실한 블록버스터'이고, 다른 하나는 '강력한 애니메이션'입니다. 심지어 두 작품 모두 전작의 성공으로 흥행이 보증된 안전한 후속작들입니다.

영화사들은 1년 중 관객이 가장 많이 몰리는 이 시기(아웃라이어)에, 가장 실패 확률이 낮은 카드만을 골라 배치했습니다.

  • 오늘 우리가 예매한 티켓은 온전한 나의 취향일까요, 아니면 자본이 설계한 '가장 효율적인 수익 모델' 안에서의 선택일까요?

어떤 영화를 보든, 혹은 보지 않든, 여러분의 크리스마스가 평온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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