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년 만의 폭염

118년 만의 폭염
Photo by Timo Volz / Unsplash

“118년 만의 폭염.” 며칠 전까지만 해도 포털 뉴스 화면을 장식하던 표현입니다. 전국 곳곳에서 폭염 특보가 발령됐고, 한낮 기온은 연일 35도를 넘나들었습니다. 밤사이 최저기온이 25도 아래로 떨어지지 않아 열대야도 이어졌죠. 당시 많은 언론은 이례적인 더위를 강조하며 “118년 만”, “역대급”이라는 수식어를 앞다퉈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날씨가 잠시 한풀 꺾인 지금, 우리는 문득 이런 질문을 하게 됩니다.
‘118년 만’이라는 숫자는 어떤 기준에서 나온 것일까?


"몇 년 만"이라는 표현의 착시

“118년 만의 폭염.” 숫자만 보면 엄청난 기록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표현 방식에 따라 만들어진 숫자일 수 있습니다.

올림픽 중계에서 “12년 만의 세계 신기록”이라는 말을 들으면, 우리는 보통 이전 기록이 세워진 해로부터 12년이 흘렀다는 뜻으로 이해합니다. 기온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해가 가장 더웠다면, 올해 기록이 갱신된 건 “1년 만의 최고 기온”이 되어야 자연스럽습니다.

그런데 언론은 올해의 폭염을 “118년 만”이라고 표현합니다. 이는 1907년 기상 관측이 시작된 이래 가장 높은 수치라는 의미로 쓰이는데, 그 사이에도 기온은 수차례 갱신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단지 ‘기상청 관측 이래 처음’이라는 프레임을 덧씌워, 이번 폭염이 마치 한 세기 만의 이례적 사건처럼 과장되는 것이죠.

같은 숫자도, 어떤 각도에서 보여주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그림이 됩니다.


조건은 숨기고, '역대급'만 강조한다

“역대 최고 기온”이라는 표현은 자주 등장하지만, 기사 본문을 열어보면 생각보다 많은 조건이 붙어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서울에서 7월 8일 기준으로 가장 높은 기온”, “광주의 일 최저기온 중 역대 3위”처럼 날짜나 지역, 시간대를 세분화한 통계가 대부분입니다. 이렇게 기준을 좁히면 ‘기록’은 언제든 새롭게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독자 입장에서 그 날이 7월 8일인지 9일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알고 싶은 건 ‘요즘 정말 덥냐’는 전반적인 체감이지, 특정 하루의 기온 순위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언론은 이런 한정된 데이터를 활용해 폭염을 더 극적으로 보이게 만듭니다.

통계에는 항상 기준이 존재합니다.
그런데 그 기준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해석이 가능해집니다. 특정 날짜나 지역만을 부각하면 실제보다 더 극단적인 인상을 줄 수 있습니다.

이처럼 자극적인 표현이 반복되면, 통계가 전달하는 정확한 의미는 희미해지고 수식어만 기억에 남습니다. “역대급”, “사상 최고” 같은 말이 실제 수치보다 먼저 와 닿는 것이죠.

더운 건 맞지만, 그 더위를 어떻게 보여줄지는 또 다른 선택입니다.


숫자 너머의 더위를 이해하려면

폭염에 대한 언론 보도는 강한 수식어로 가득하지만, 중요한 건 우리가 겪는 더위가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는지를 조금 더 차분하게 들여다보는 일입니다. 기온 자체는 사실이지만, 그 해석은 얼마든지 맥락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더위를 이해하는 데 도움되는 기준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1. 하루의 기온 흐름을 함께 살펴보는 시선입니다.
    보통 언론은 최고 기온만을 강조하지만, 실제 체감은 낮과 밤을 얼마나 견뎌야 했는가에 더 가깝습니다. 일 최고와 일 최저 기온을 함께 보는 것만으로도, 단순한 ‘하루 중 가장 더운 순간’이 아닌 더위의 지속성과 일상의 온도감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2. 체감 온도에 영향을 주는 환경 요소들을 함께 살펴보는 것입니다.
    같은 온도라도 덥게 느껴지는 날이 있고, 의외로 견딜 만한 날도 있습니다. 이는 습도, 바람, 구름양 같은 요소에 따라 체감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특히 열대야가 이어질 때는, 체감 이상의 불편이 일상에 남습니다. 이럴수록 더위를 입체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3. 보도의 기준을 질문해보는 습관입니다.
    “역대 최고”라는 표현을 봤을 때, ‘언제부터 측정한 기록인지’, ‘무슨 조건의 최고인지’를 생각해보는 것만으로도 숫자에 대한 맹신을 줄일 수 있습니다. 숫자 자체가 아닌 숫자를 보여주는 방식을 함께 읽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더위는 숫자로 측정되지만, 그 의미는 맥락 속에서 해석됩니다.
기록만이 아니라 흐름을 보는 감각, 자극적 표현 대신 수치를 읽는 습관이, 더위를 이해하는 데 더 정확한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묻습니다

  • “118년 만의 폭염”이라는 표현은, 정말로 사실을 정확하게 전달하고 있을까요?
  • 우리는 자극적인 수식어 속에서, 통계가 가진 본래의 맥락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우리가 마주한 숫자는 사실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숫자가 어떤 조건 아래에서 만들어졌는지, 또 왜 그것이 강조되는지를 함께 묻는 일은 더 중요합니다.

기록은 뜨거웠고, 해석은 과열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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