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10억 원어치가 팔려도 일자리 세 개도 못 만든다: 2024년 산업연관표
2.9명. 수출의 4분의 1 가까이를 버는 반도체·전자가 10억 원어치마다 부르는 일자리로, 음식점·숙박의 5분의 1 수준입니다.
경제가 좋아졌다는 뉴스와 취업이 어렵다는 뉴스를 같은 날 아침에 읽는 일이 올해는 유난히 잦았습니다.
세계가 AI 반도체를 사려면 한국과 대만을 거쳐야 하는 시대인데, 한국은행의 산업연관표를 보면 반도체·전자는 10억 원어치가 팔릴 때 일자리를 2.9개 만드는 데 그쳤습니다.
나라가 버는 돈과 사람이 얻는 일자리가 서로 다른 길을 걷고 있는 셈입니다.
반도체·전자는 사람 손보다 설비와 제품 값으로 돈을 번다
반도체·전자 제품이 10억 원어치 팔리면 공장은 물론 부품과 장비를 대고 물건을 나르는 회사에서도 일자리가 생기는데, 이걸 모두 더해도 세 명이 채 안 됩니다. 그중 공장 안에서 일하는 사람은 한 명 남짓이고, 나머지는 도소매와 장비 수리, 연구·설계, 운송 같은 곳에서 생깁니다. 만드는 일의 상당 부분을 사람보다 값비싼 설비가 맡기 때문입니다.
2024년에는 이 숫자가 1년 만에 3.6명에서 2.9명으로 내려앉았습니다. 이 업종에서 일한 사람은 38만 명대로 거의 그대로였는데, 같은 사람들이 만든 물건이 1년 새 4분의 1 더 많은 돈이 됐기 때문입니다.
IMF 연구진도 AI 하드웨어 교역이 늘어난 것은 물량보다 가격 덕이었다고 봤습니다. 값이 오르면 같은 사람이 만든 제품으로 10억 원을 더 빨리 채우고, 10억 원에 담기는 일자리는 그만큼 줄어듭니다. 반도체 호황이 일자리 호황으로 번지지 않은 이유 가운데 하나가 여기에 있습니다.
경제는 커졌는데 일한 사람은 줄었다
같은 돈이라도 어디에 쓰이느냐에 따라 부르는 사람이 다릅니다. 우리가 먹고 입고 배우는 데 쓰이면 10억 원에 9.7명이 일하지만 수출로 나가면 5.0명에 그치는데, 2024년 한국 경제를 끌고 간 건 바로 그 수출이었습니다.
수출이 늘어나자 그 덕에 생긴 일자리도 늘었습니다. 하지만 소비와 투자가 부르던 일자리가 더 크게 줄면서, 시간제 근무를 전일제로 환산한 취업자는 1년 새 2만 8천 명 줄었습니다. 수출이 부른 일자리는 늘었지만, 내수가 잃은 일자리를 메우지는 못한 해였습니다.
10억 원이 부르는 일자리가 줄어드는 흐름은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습니다. 2015년 11.3명이던 경제 전체 평균은 2024년 7.8명이 됐는데, 물가가 오른 몫을 걷어내고 비교할 수 있는 2020년까지만 봐도 줄어드는 방향은 같았습니다. 경제가 커지는 속도와 일자리가 늘어나는 속도가 조금씩 따로 움직이고 있는 셈입니다.
IMF가 걱정한 쏠림은 일자리에서 먼저 보인다
IMF 연구진은 이번 달 세계경제전망에서 AI가 이끈 성과가 소수의 기업과 업종, 나라에 몰려 있다며, 그 열매가 나라 사이는 물론 나라 안에서도 더 고르게 나뉘어야 한다고 짚었습니다. 나라 밖에서 보면 AI 하드웨어 순교역의 62%를 맡은 대만과 한국이 그 소수의 나라이고, 나라 안에서 보면 반도체가 그 소수의 업종입니다.
산업연관표의 취업유발계수는 제품을 만들고 부품과 장비를 대는 길에서 생기는 일자리만 셉니다. 반도체 회사가 낸 세금이 학교와 병원에서 쓰이고, 직원이 받은 월급과 성과급이 식당과 학원에서 쓰일 때 생기는 일자리는 '소비'라는 다른 칸에 잡히죠. 반도체가 번 돈이 사람을 부르는 큰 길은 공장 안이 아니라 우리 지갑을 거치는 길입니다.
그 길이 넓어지려면 번 돈이 몇몇 회사의 이익과 일부 직원의 성과급에 머물지 않고, 더 많은 사람의 지갑으로 흘러가야 합니다.
우리는 묻습니다
당신이 반도체 회사에 다니지 않는다면, 이 호황이 당신의 일자리에 닿는 길은 협력업체의 주문서이거나 누군가의 월급이 당신의 회사와 가게에서 쓰이는 길입니다. 일자리 하나가 생기려면 반도체·전자는 3억 5천만 원어치가 팔려야 하지만, 음식점과 숙박업은 7천만 원어치면 됩니다. 당신의 일은 그 두 길 가운데 어느 쪽에 더 가까이 있나요?
한국은행은 2025년 들어 반도체 공장의 일손이 늘어 고용 효과가 커질 수 있다고 내다봤는데, 그 답은 내년 9월쯤 나올 「2025년 산업연관표(연장표)」에 있습니다. 반도체·전자의 취업유발계수가 2.9명보다 높아지면 일자리가 매출보다 빨리 늘었다는 뜻이고, 더 낮아지면 이번에도 매출이 사람보다 앞서 달렸다는 뜻입니다.
나라의 돈을 가장 많이 벌어 오는 산업이 사람은 가장 적게 부르는 쪽에 서 있다면, 성장의 열매를 나누는 길은 공장 밖에서 찾아야 할지 모릅니다. 반도체가 번 돈이 더 많은 사람의 일자리가 되려면, 그 돈은 어디로 흘러가야 할까요?
숫자의 출처
- 원문: 한국은행, <2024년 산업연관표(연장표) 작성 결과>, 2026년 9월 21일 발표
- 함께 본 자료: IMF, <World Economic Outlook, October 2026: Resilience Under Strain, Urgent Choices>, 2026년 10월 13일 / 한국은행, <2010-2015-2020년 접속산업연관표 작성결과>, 2026년 6월 30일
- 취업유발계수: 어떤 상품의 최종수요가 10억 원 생길 때 전 산업에서 직간접으로 유발되는 전업환산 취업자 수(p.13 용어 해설). 전 산업 7.8명은 p.11, 소비·투자·수출별 값과 취업유발비중은 p.12 표. 그해 가격의 총산출로 나눈 값이라 연도 간 비교에 유의해야 한다
- 반도체·전자: 33개 통합대분류의 '컴퓨터, 전자 및 광학기기'(반도체, 전자표시장치, 전자부품, 컴퓨터, 통신·영상음향기기, 정밀기기). 2024년 2.87명, 2023년 3.62명은 원문에 붙은 〈별첨〉 통계표 19, 수출 구성비 23.1%(33개 부문 중 1위)는 통계표 9
- 어림한 값: 일자리 하나에 3억 5천만 원은 10억 원 ÷ 2.87명, 7천만 원은 10억 원 ÷ 14.08명(음식점 및 숙박서비스). '공장 안 한 명 남짓'은 33부문 투입산출표로 2.87명을 부문별로 나눈 값(1.13명). 2015년 11.3명은 접속산업연관표 경상 기준(불변 기준 2015년 10.9명→2020년 9.7명, SBS Biz 보도로 확인)
- 판정 지표: 한국은행 「2025년 산업연관표(연장표)」, 최근 두 해 표는 2025년 9월 24일·2026년 9월 21일 발표. 비교 기준값은 직전 발표의 2.87명. 2025년 고용 전망은 부상돈 투입산출팀장의 9월 21일 설명(서울경제·시대 보도)
- 인용 조건: 해당 자료(IMF 세계경제전망)의 내용은 IMF 이사회와 각국 당국의 공식 견해가 아닌 IMF 연구진의 견해입니다.
- 관련 글: 9월 9일 거대해진 경제와 달라진 엔진을 읽는 법(2026년 2분기 국민소득), 10월 7일 직장인 10명 중 8명은 올해 월급이 깎였다(2026년 8월 사업체노동력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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